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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국내여행] 조선시대와 서울의 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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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은 우리나라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도이다. 고려 말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여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성계는 집권 후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었으며, 개경에서 한양(현재의 서울)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이 시기부터 서울(한양)은 줄곧 수도로서 자리매김하였고, 역사적 전통과 멋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서울의 모습은 옛 한양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크기도 커지고, 높은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길이 복잡해 졌다. 하지만 서울 곳곳에는 아직까지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곳을 알아보려고 한다.

 

 

[국내여행] 조선시대와 서울의 역사

 

 

#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1대 왕이 되었고,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공신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유교를 높이 여기고 불교를 억제한다)을 기틀로 조선을 건국하였다. 그리고 정도전은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 의, 예, 지, 신(仁, 義, 禮, 知, 信)을 바탕으로 한양(서울)을 디자인하였다.

 

그래서 인(仁)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의(義)는 돈의문(敦義門), 예(禮)는 숭례문(崇禮門), 지(知)는 소지문(炤智門), 후에 숙청문(肅淸門)으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칭이 여러번 바뀌었다)으로 4개의 한양 대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한양은 4대문을 잇는 담벼락이 있었으며, 그 담 안에만 한양 도성이라고 불리었다. 지금은 담벼락이 모두 허물어졌으며, 서울의 크기도 조선시대에 비하면 훨씬 커진 것이다.

 

신(信)은 한양(서울)의 중심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워 유교의 5대 교리를 모두 포함하는 수도 한양을 만들었다.

 

# 삼국시대와 서울 지역

 

서울은 도심에 한강이 자리잡고 있어 취수(取水, 물을 얻다)가 편리하고, 토지가 비옥해 농사를 짓고 터를 잡고 살기가 좋았다. 그리고 한강에서 배를 타고 중국과 교류도 쉽게 할 수 있었고,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풍수지리가 좋은 지역이다. 그래서 삼국시대부터 서울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쟁이 치역하였다. 서울을 차지하는 나라는 전성기를 맞았고, 서울을 뺏긴 나라는 전성기만큼의 세력이 없을 정도였다.

 

# 흥인지문(興仁之門)

 

(사진출처 : 구글)

 

동대문이라고도 불리는 흥인지문은 대한민국 보물 제1호(1963.01.21 지정)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었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흥인지문 주변에는 유명한 동대문 시장도 있다. 흥인지문을 둘러보고 동대문 시장에 들러 쇼핑을 하는 재미도 볼 수 있다.

 

# 돈의문(敦義門)

 

(사진출처 : EBS 캡쳐 화면)

 

서대문 이라고 불리는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었다. 대신 서울 종로구 새문안길(강북삼성병원 앞)에 '돈의문의 터'가 있다. 그러나 이 위치도 추정치이다. 아주 오래전 철거되었기때문에 남아있는 몇 장의 사진으로 그 터의 위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구글)

 

 

 

# 숭례문(崇禮門)

 

(사진출처 : 구글)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숭례문은 국보 제1호(1962년 12월 20일 지정)이다. 그러나 숭례문은 2008년 2월 10일 화재가 발생하여 모습을 잃었고, 현재 모습은 2013년 재건된 모습이다. 숭례문의 현판은 세로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한다는 풍수지리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

 

숭례문의 주변에는 남대문 시장이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판다는 남대문 시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다.

 

# 소지문(炤智門), 숙청문(肅淸門), 숙정문(肅靖門)

 

(사진출처 : 구글)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1396)에 완공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평소에는 닫아두었기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 길은 나있지 않다. 1976년 북안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특별한 점은 탐방객은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군사 보호 지역이라 신분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 보신각 (普信閣)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보신각에서는 매해 말 '타종행사'를 실시한다. 보신각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1990.06.18 지정)이다. 보신각은 시간을 알리는 용도의 종이 있고, 요즘에도 한번 씩 타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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